페르디난트 & 도로테아 A

페르디난트
음, 희한한 곳에서 만났군, 도로테아. 너는 신앙에 독실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도로테아
알고 있었군요, 페르. 분명 나는 경건한 신도라고 할 수는 없어요.

도로테아
귀족 중시의 불평등한 사회를 만든 여신 덕분에 끔찍한 꼴을 당했으니까요.

페르디난트
신성한 대성당에서 주에게 불평을 하다니 용기가 있는 데도 정도가 있어야지, 거참.

페르디난트
그런데 끔찍한 꼴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지?

도로테아
으~음, 당신한테 가르쳐 줄 필요가 있나요?

도로테아
뭐, 상관없죠. 내가 고아였던 건 어차피 알고 있죠?

도로테아
귀족가의 뒷골목에서 시혜를 구걸하거나, 잔반을 찾아 헤매면서 배고픔을 모면하던 나날이었죠.

페르디난트
역시 그랬군…… 부랑자 고아를 몇 번인가 본 적이……

도로테아
후후, 그 뒤로 마누엘라 선배에게 발견돼서 나는 가희가 됐어요.

도로테아
가희인 나를 대하는 귀족들의 태도는 그거야말로 아주 훌륭했답니다.

도로테아
내게 침을 뱉었던 귀족들이 그 입으로 내 노래와 외모를 칭찬했죠.

도로테아
나를 걷어찼던 귀족이 아름다운 구두를 내게 선물하고요. 정말 우스꽝스러웠어요.

페르디난트
……그래서 너는 귀족을 싫어하게 된 거군. 하지만…… 왜 나를 동류로 보는 거지?

페르디난트
이 페르디난트가 그런 남자로 보이나?

페르디난트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 태도를 번복하는…… 귀족이라 생각할 수도 없는 무리와 똑같다고?

도로테아
으음…… 다르다고요? 나는 기억하고 있어요.

도로테아
그건 가희가 되기로 정해진 날…… 난 들떠 있었어요.

도로테아
조금이라도 더러운 걸 씻어 버리고자 마을의 분수에서 몰래 물을 끼얹었죠.

도로테아
노래하며 물기를 말리고 있었어요. 거기에 당신이 나타났죠.

페르디난트
내, 내가……!? 아니, 설마 그건……

도로테아
역시 기억하고 있네요. 당신은 나를 노려보다가 금방 달려갔어요.

도로테아
다음에 학교에서 만났을 때는, 그 귀족은 딴 사람인 양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어요.

도로테아
꽃에 모여드는 꿀벌처럼 말이죠. 꽃봉오리일 땐 쳐다보지도 않았던 주제에.

페르디난트
……그래, 그런 거였군. 그때 그 노래…… 너였어.

페르디난트
도로테아, 들어 주길 바라. 그건 오해야.

페르디난트
나는 그때…… 그때, 넋을 잃고 널 보고 있었어!

페르디난트
아름다운 목소리와 사랑스런 미소…… 햇빛이 물에 아로새겨져서 물의 정령인가 싶었어……

도로테아
거, 거짓말!

페르디난트
거짓말이 아니야. 그저 어린 마음에 무심코 부끄러워져서 도망치고 말았어.

페르디난트
용기를 내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지. 꿈이라고 생각했어.

도로테아
………………

도로테아
……그래요, 믿을게요. 과자를 만들던 당신을 보고 느꼈어요.

도로테아
당신은 내가 싫어하는 귀족들과 다르단 걸요. 하지만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페르디난트
괜찮아, 오해가 풀렸다면 그걸로 만족해. 그리고 나는 꿀벌이라도 상관없어.

페르디난트
너라는 여왕벌을 위해 날아다니는 그런 역할도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도로테아
후후후후. 그럼 나쁜 벌레가 달라붙지 않도록 지켜 주겠어요?